2020년5월06일 (Harvard Magazine :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출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의료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미국의 높은 의료비 지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행정 체계로 인한 관리 비용의 증가입니다. 미국의 의료 관리 비용은 전체 의료비 지출의 약 1/3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다수의 민간 보험사 존재, 표준화되지 않은 행정 절차와 시스템 등에 기인합니다. 반면 독일, 스위스 등 복수 보험자와 민간 의료 공급자가 공존하는 다른 국가들의 경우 의료 관리 비용이 미국의 절반 이하 수준에 그칩니다. 관리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민간 보험사와 의료 공급자들이 준수해야 할 표준화된 규칙과 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수립하고 이행을 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시장 독점으로 인한 높은 의료비용입니다. 의약품의 경우 미국의 약가가 여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인데, 이는 제약사들이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과도한 가격을 책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문 병원들 역시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동일 의료행위에 대해 일반 병원 대비 수배의 진료비를 받아왔습니다. 문제는 대다수 환자들이 비싼 의약품이나 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보험이 없는 개인이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중증질환 등 특수한 상황의 경우 환자들은 명문병원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장 기능에만 맡겨서는 과도한 의료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우며, 약가 규제,진료비 상한제 등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다만 지나친 규제로 인해 제약사의 신약개발 투자 유인이 훼손되거나 명문병원들의 의료 서비스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는 만큼, 적정 수준의 균형 잡힌 규제방안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의료 서비스의 불균형적 공급과 과도한 사용(overuse) 문제입니다. 미국은 MRI, PET 등 고가 의료장비와 전문의 공급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반면, 일차의료와 예방 서비스는 만성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고가 의료서비스의 과잉공급은 불필요한 검사와 시술을 양산해 전체 의료비 상승을 초래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고도화된 의료서비스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실제 심혈관질환이나 암 치료에 드는 의료비는 미국이 월등히 높으나, 관련 치료성과는 오히려 여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고가 의료장비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의료비 절감을 도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이에 더해 의료공급자가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남발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행위별수가제 모델에서 탈피해 의료기관에 총액예산을 배정하고, 비용 절감액의 일부를 의료기관과 공유하는 등의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충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고, 건강결과(health outcome)까지 함께 관리하는 정교한 설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편 건강보험료와 의료비 부담이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진영 간 입장차가 매우 큽니다. 진보진영은 행정비용을 최소화하고 보편적 의료서비스 제공이 용이한 정부 주도의 단일보험자(Single payer)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시장 경쟁원리를 통해 의료의 질과 비용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의료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진영의 염려와 요구를 균형있게 고려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과감한 처방이 필요합니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료비용 절감과 의료서비스 접근성 제고라는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설득해나가는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더불어 개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보완책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의료개혁이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도 크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미국 사례는 고령화와 의료비 급증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여타 선진국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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